박해빈의 <BEING 展> 앞에서 - 김태헌
박해빈의 <BEING 展> 앞에서


  “저 너머요? 아무것도 없어요. 굳이 이야기하라고 하면 캔버스 뒤죠.”

  커다란 ‘핑크사막’이 스페이스 몸미술관 2관 노출 콘크리트 벽에 걸렸다. 그림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 금방이라도 불꽃이 일 것 같다. 사막을 걸으며 내 모든 걸 까맣게 태워 소멸시키고 싶은 충동이 순간 밀려든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짙푸른 먹구름이 핑크사막을 누르고 있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풍경이다. 그리고 문득 그 두 개의 풍경 사이, 모래언덕 너머엔 어떤 풍경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며칠 후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결국 전시장을 찾아가 박해빈 작가에게 물었다. 입가에 장난기어린 웃음이 살짝 번지더니 “저 너머요? 아무것도 없어요. 굳이 이야기하라고 하면 캔버스 뒤죠.”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내게 ‘밖으로 나가지 말고 지금 여기 그림 안에서 즐겨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잊었던 뭔가를 찾아보려고, 새로운 걸 느껴보려고 다시 화면 앞으로 다가섰다. 그 넓은 사막, 아니 그림엔 붓 터치가 전혀 안 보인다. 마티에르도 없다. 유화물감을 화면 모든 곳에 균일하게 한 치 오차 없이 얇게 펴놓고 그 위에 다시 펴기를 반복해 놓았다. 그래서인지 뜨거운 사막은 더 숨 막히고 깊은 정적이 감싼다. 그렇게 그림 앞에 서 있다가 그림에서 찾지 못한 뭔가를 작가를 통해 알아보기 위해 나는 다시 그녀 앞에 섰다.

  박해빈은 페인터다. 흔히들 미술에서 페인터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화폭에 담아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편 우리는 완성된 그림에서 작업의도를 파악하는 것으로 페인터를 규정한다. 그러나 페인터는 다가갈수록 실체에 접근하기 힘든 존재다. 그들의 작품은 정신에 뿌리를 두지만 몸속 모든 감각으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고 있으면서, 온몸을 열어놓은 채 그림 속으로 자신을 밀어붙이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과 마주한다. 그런 점에서 페인터는 길고도 험한 산길을 걸어가는 트레커(trekker)와 닮아 있다.

  어깨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와 멈춤 없는 작은 보폭들은 트레커의 길고 긴 산행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며칠을 걸었고, 어디엘 갔고, 몇 킬로미터를 걸었으며, 어떤 일을 겪었는가에 관심이 쏠려있다. 그 외의 것들은 별로 관심이 없을 뿐더러 알려고 해도 알 길이 없다. ‘나를 부르는 숲’의 저자 빌 브라이슨은 뉴햄프셔 주로 이사를 한 후, 그곳 작은 마을 숲에서 좁다란 길을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서 애팔래치아 트레일(3,520km) 표지판을 보았다. 그는 친구와 그 길로 뛰어들었고 완주는 못했지만 1,392km를 걸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걷는 일에만 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만족스럽게 몰두했다.”고. 그리고 그는 수많은 문장 속에 산행중의 온갖 경험을 토로하지만 사실 우리로선 그가 온몸으로 겪은 일을 공유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박해빈은 전시 준비 막바지 2016년 무진장 더웠던 여름날, 한낮의 더위를 피해 작업실 문을 꼭 닫아걸고 캔버스들로 가득한 좁은 작업실에서 긴긴 밤을 선풍기 한 대로 견디며 스페이스 몸미술관 개인전을 준비했다. 어려서부터 그리는 게 좋아 줄곧 그림을 그려왔고 그래서 익숙해졌을 그녀지만 그리는 일은 늘 처음 같다. 매번 작업 앞에 서면 자신이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 조색을 한 후 테스트를 하고, 그려 넣을 이미지의 위치를 잡기 위해 지관이 명당자리를 잡듯 캔버스 앞을 오가며 신중하게 위치를 찾는다. 한편 물감을 얇게 펴며 그려가는 반복적인 붓질은, 치밀하고 계획적인 앞선 과정을 지워내며 무의식의 세계로까지 열어준다. 특히나 칠하고 건조시키고 다시 칠하는 일을 반복해야하는 유화작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리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물감이 마르기 직전에 다시 물감을 올려야하는 아주 섬세하고 번거로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핑크사막을 꼬박 두 달 동안 작업하는 내내, 그녀 또한 브라이슨처럼 작업 내내 그리는 일에만 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만족스럽게 몰두했을 것이다.

  “선생님, 이번 전시 글 좀 써주세요.”
  ‘아니 이게 뭔 소리? 삑사리 난 그림을 좋아라 그려대는 드로잉 작가인 나에게 전시 글을 써달라니?’ 물론 가당치 않다고 피했지만 며칠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글 꼭 써주셔야 돼요.”라고 못을 박는다. 결국 이유 아닌 사정에 발목이 잡혀 지금 여기까지 끙끙대며 글을 쓰고 보니, 이제야 핑크사막 밖으로 걸려있는 다른 그림으로 눈을 돌린다. 전시장 다른 벽엔 작은 창을 통해 보이듯 하늘과 하늘과 하늘이 가득 걸려 있다. 그런데 어떤 하늘은 좀 이상하다. 하늘 뒤에 하늘〈두개의 하늘〉이 있고, 블라인드에 하늘〈닫힌 하늘〉이 걸려있다. 그리고 벽 한 쪽엔 벽 속에 벽〈Between the Walls〉이 있다.
  위 작업들처럼 박해빈은 관람자들이 익숙하게 그림을 바라보는 것에 가끔 농담 같은 장난을 치며 슬쩍 화면을 비틀어 놓는 걸 좋아한다. 그림에 농담을 던지듯 보이지만 사실 자신의 그림으로 매번 쉽게 들어오는 걸 막는 장치다. 일종의 문턱이다. 그리고 그 문턱을 지나면 박해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보이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익숙함 때문에 지나쳤던, 내안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세계에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작업은 이러한 관심들이 일상적 경험 속에 함께 스며들며 시간이 지나면서 순간순간 발화하는데 이때 그 찰나의 느낌들을 시각화합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작가는 왜 문턱이란 장치를 사용하는 걸까. 여기에 적당한 글이 있어 최근에 쓴 나의 글을 눈치 없이 옮겨본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잘 알려진 작업이 있다. 그림을 그림으로 보지 않고 대상의 재현 여부만 따지는 사람들에게 마그리트의 거짓말 같은, 말장난 같은 이 직품은 농담 속에 뼈가 있다. 대개는 이 작품을 ‘이것은 그림이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내가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배운 것은 ‘그림 앞에서 잠깐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바로 그 점이다.〉

내친 김에 요사이 자주 인용하는 수전 손택의 말까지 옮겨보기로 하자.
  
<“언젠가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혁명이었다. 또 언젠가는 예술작품을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창조적인 활동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박해빈은 하늘을 자주 바라본다. 먼 여행지에서까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다닌다. 그런 하늘사랑은 자연스레 그림으로 그려지고 전시장에 걸렸다. 문턱 넘어 가까이 다가간 그녀의 하늘은 시간을 멈춰 놓은 것 같다. 파란 하늘은 짙다. 어떤 건 점점 깊어지더니 검게 보이기까지 한다. 혹시 눈이 아프도록 햇빛을 오래 바라볼 때 느꼈던 현상이 반영된 건 아닐까? 궁금했지만 이번엔 질문 없이 그림 안에서 혼자 놀아보기로 했다. 으음, 역시나 이번에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하늘 연작<하늘#01~09>을 보니 그녀는 공중으로 손을 뻗어 맘에 드는 하늘을 컬렉션하며, 이번 작업에서도 평범한 하늘에 자신을 투사시키며 거기서 느꼈던 것을 그려놓았다. 반면 박해빈은 자신의 작업에 잡다한 수사들을 끌어다가 미학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나 또한 그녀의 작업에서 이러한 수고를 덜고자 했다) 이 점에서 박해빈은 자유롭다. 자신의 작업을 잘 알고 있음이다. 얍삽한, 잔머리를 굴리는 일 따위는 엉덩이로 지그시 누르고 그림 앞에 앉아 있음이다. 여기서 또 하나, 그녀는 관람자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도 수평적 거리 두기를 하며 부드러운 소통을 원한다. 관람자를 그림 앞으로 바짝 불러들이지 않고 그들 삶의 경험으로 느끼면서 바라보길 원한다.

  박해빈의 그림엔 이미 모든 게 충분하다. 그래서 작가는 그림 밖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처음부터 무언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도 모른다. 작업의 전 과정에 집중하고, 느끼며, 즐기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 너머요? 아무것도 없어요.”란 그녀의 말은 결국 그림 밖으로 나가서 찾지 말고 그림 안에서 먼저 즐기라는 메시지다.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앞서 본 핑크사막이 긴 산행이라면, 하늘 그림들은 짧은 산행에 가깝다. 여기에도 만족스럽게 몰두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 작업 사이로 녹아있을 그녀의 심층을 엿보는 동안 나의 시선이 어느 순간 화면과 뒤엉켰고, 무수한 붓질로 쌓아올린 매끈한 모든 사이로 언뜻 언뜻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거기엔 붓질을 통해 그림 앞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며, 일상의 풍경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림을 통해 계속 만나고 싶은 박해빈의 모습일 것이다.
                                                                  2016 놀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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