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빛바랜, 오래된 색으로 만든 성남지도 - 김태헌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되도록 빨리 버리고 지워내고 잊어버리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다. 오래되었다고 집을 부숴버리고, 멀쩡한 외모까지 서슴없이 바꿔버린다. 거기엔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태도가 숨어있는데, 그 끝을 따라가 보면 자본과 경쟁, 욕망 등이 뒤엉켜 개인의 삶을 지배한다. 더 큰 문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현실의 굳건한 좌표라고 믿고 따르는 데 있다. 지도위를 걸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지도가 땅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믿는 자들의 손에 들린 지도는 달랑 한 개일 경우가 많다.
  지도는 대지(현실)를 읽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다. 하나의 지도는 대지의 모든 걸 알려주지 못한다. 탐험가의 손에 들린 지도와 군인이 사용하는 지도, 여행자의 손에 들린 지도는 다르다. 삶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더 많은 지도를 필요로 한다.

  작업은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하였고, 그 대상지는 낡고 오래된 도시다. 특히나 낡고 오래되어 재개발 대상인 공간은 도시환경개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도 개발이익과 재산을 불리는 투기목적과 맞닿아 있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수십 년을 거치면서 계속 문제 제기되어 왔지만 여전히도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은 놀랍게도 변한 게 없다. 나이를 먹으면 몸에 주름이 생기고, 흰 머리카락이 늘고, 피부엔 검버섯이 생긴다. 이 모든 현상은 살아낸 시간을 드러내는 존재 자체다. 그곳은 인생의 깊이와 내공이 저장된 장소다. 그 점에서 오래된 도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하나의 지도만을 쥔 그들은 구도시나 나이든 몸에서 추함만을 부각시키며, 매번 그 곳에 있는 많은 지도를 불사른다.

  직선으로 만들어진 대도시는 많은 걸 감추고 사람들을 욕망의 대상으로 빠르게 호명한다. 도시에선 주체가 없고 모두 소비자다. 도시는 끊임없이 속인다. 한편 나는 골목길 예찬론자다. 여행지에서도 중심보다는 주변으로 다니길 좋아한다. 그곳은 다소 불편하지만 삶의 속살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걷게 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대상을 찾고 불러내 함께 논다. 길을 잃으면 더 즐거운 곳, 그 골목은 스스로 지도를 만든다.

  골목길엔 많은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빛바랜 색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이다. 길가에 핀 야생화를 보듯 골목을 걷다가 낡은 대문의 페인트  색 등을 보면 자연스레 눈길이 멈춘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색을 모아 지도로 만들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2011년 대안공간 충정각에서 「근대의 숲」이란 전시를 준비하며 충정로 골목을 다니며 채집한 오래된 색으로 작업을 시도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작업노트에 이렇게 썼다.
「내 기억속의 서울은 70년대부터 늘 ‘공사중’이었다. 도로, 지하철, 아파트, 한강, 청계천 등등. 그리고 한쪽에서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것이 나타났다. 몇 년 전부터 서울은 디자인도시라는 새로운 간판을 내걸었다. 그러니 서울은 여전히 ‘공사중’인 게다. 그런 도심을 천천히 걷다보면 빌딩 숲 안으로 느린 숨을 쉬고 있는 골목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작은 목소리로 울퉁불퉁 나름의 역사를 써온 느린 공간이다.
  작업은 충정로 일대 골목길 사이에서 찾은 색이다. 낡고 빛바랜 색을 채집하여 집에 돌아와 다시 작은 캔버스에 재현했다. 만만치 않은 일인 줄은 알았지만 막상 작업에 집중할수록 오래된 색을 그리는 게 점점 불가능했다. 빛바랜 색은 마치 주먹을 쥘수록 빠져나가는 모래 같다.」
  새것을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오래된 것을 일상 속에 오래 놔두고 즐기는 것도 어렵다. 둘 사이는 사뭇 달라 보여 공존하기 어려울 듯 보이지만, 사실, 함께 있을 때 서로의 가치는 더욱 빛이 날 것이다.

  작업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골목길이 내손에 슬쩍 건네준 하나의 지도다. 그 골목길은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고개마다 간직한 성남의 골목길이다. 나는 마른장마에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오랜만에 좁은 골목길을 걸었다. 금광동과 신흥동에 이어 세 번째 나선 상대원동을 걷는 동안 계획했던 작업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아주 복잡한 구시가지가 보여주는 강렬한 풍경 때문이었다. 그 강렬한 풍경은 주민들의 삶을 색으로 그리는 지도를 거부했다. 왜일까? 나는 질문 하나를 들고 성남을 돌아서 나왔다.

  철이 들고 성인이 된 후 인생의 쓴맛을 알기 시작하면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 값싼 소주다.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대표 술 소주는 병속의 내용물이 사라지면 자신의 병 색깔을 더 뚜렷이 보여준다. 사실 마시기 전의 병 색깔과 차이는 없다. 마시는 동안에는 안 보이던 것이 다 마시고 나서의 아쉬움 때문인가 텅비어버린 소주병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개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병 모양과 너무 평범한 색을 한 소주(예전의 소주병)가 꼭 우리자신 같아서일까. 색이 첨가되지 않은,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만든 병 색깔이 바로 소주병이란다. 다시 말해 돈을 들이지 않고 만든 싸구려색이다. 서민, 소주, 소주병 색깔까지 이 모두가 우연의 일치라 하기엔 왠지 씁쓸하다. 나는 집에 돌아와 ‘성남과 소주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다. 가난한 서민이 그렇고, 단조로운 집이나 성남 구시가지의 색이 그렇다. 가파른 언덕 좁은 땅에 집을 짓다보니 디자인은 먼 이야기다. 그런 그곳의 지도를 오래된 빛깔로 그려볼 욕심으로 다가섰다가 적잖이 낭패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주택은 대개가 붉은 벽돌집이었고, 그나마 컬러는 대문에 한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성남 구시가지의 색은 힘겹게 살아가는 삶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좁다란 고갯길 벽돌집 사이로 걸으며 띄엄띄엄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색의 조각들을 마치 보물을 찾은 듯 수집했다. 작업실에 캔버스를 쌓아놓고 성남에서 수집한 색을 재현하자니 조금은 긴장되고 설레었다. 낡고 오래된, 때론 허물처럼 벗어낸 색을 가지고 성남을 보여줄 수 있을까?란 생각은 쉽게 떨쳐지지가 않았다. 4호 캔버스 45개를 쌓아두고 하나의 색을 만드는데 많은 색이 필요했다.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다. 성남사람에게 성남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그가 되지 않고는 성남을 안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그런데 애써 칠해놓은 그림을 모아놓고 보고 있자니 이건 너무 예쁘다. 그림이 늘어나면서 퍼즐처럼 모인 색의 지도는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름답다! 또 한 번 작업 도중에 물음표가 붙었다.
  이건 또 뭐지?                        
                                                              NEW CARTOGRAPHERS/송원아트센터 작업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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