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DMZ/드로잉 전시글 - 김태헌
  60년 이상 남북을 가로막은 휴전선 철책은 오랜 시간 동안 깊이 뿌리를 내렸다. 나는 가끔 철책의 뿌리가 확 뽑혀 나가는 꿈을 꾸다가도 영영 뽑히지 않으면 어쩌나 싶을 때가 있다. 생각해보니 깊이 뿌리내린 철책은 이제 그 자체로서 현실을 넘어 어느덧 일상적 삶으로 무수히 변이되어 현실위에 또 다른 철책을 만들어 버렸다. 결국 철책을 거둬 내려하면 함께 따라 나오는 수많은 것들이 통일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일상 속 DMZ 드로잉’작업은 이미 거대하게 자란 ‘남북분단’ 현실 속에 일그러지고 비뚤어져버린 불편한 작은 사실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데 있다. 사소한 일상을 간과하고 큰 문제에만 매달리다 보면 분단현실은 지금처럼 계속 꿈속에만 있거나, 상투적인 정치적 상황에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하나의 문제는 언제나 모든 문제와 연결된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의 소소한 것에 관심이 없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개인의 취향이나 행복은 늘 뒷전이었다. 그러나 이젠 삶에서 작은 것들을 놓치면 인생은 알맹이가 빠진 채 허무해진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분단도 마찬가지다. 작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분단문제는 지금껏 그래왔듯 특정집단의 입맛에 따라 이용될 뿐이다.
  존버거의 소설 ‘A가 X에게’를 보다가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지옥은 돈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고안한 것이고, 그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함이다. 우선 그들의 처지가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는 협박을 반복함으로써,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약속을 통해, 말을 잘 듣고 충직하게 지내면, 다른 삶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그들도 지금 이 세상에서 부를 통해 살 수 있는 것과 그 이상의 것까지 즐길 수 있다는 약속을 통해서 말이다.」곰곰이 생각해보니 분단 또한 권력유지를 위해 정치적으로 기만 당하지 않았던가.

  요사이 세상이 거꾸로 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정말 세상이 거꾸로 갈 수 있을까? 그런데 따스해졌던 현실은 점점 식어가더니 어느 순간 싸늘히 변해버렸다. 개인은 더 작아지고 국가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와중에 ‘일베충’이란 변종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갑질하는 문화가 기승을 부리며, 현실은 한쪽 눈만 강요한다. 그 속에서 분단이란 주제를 가지고 드로잉으로 자기성찰과 사회적 성찰을 동시에 끌어낼 수 있을지 조심스럽다.
  드로잉은 일상의 발견 같은 작은 것들이다. ‘열맞춰, 잊지 않겠습니다. 두창리 DMZ, 조국의 미래 노인의 책임, 평화의 섬, 다나까 대학생활, 수컷-진충보국, 나와 초파리와 DMZ, 완벽한 교육, DMZ 생수, 부러진 화살, Sticker Project,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Monologue, 헌인동, 다람쥐와 찌르레기와 함께 있는 나그네’ 등은 참여 작가들이 일상 속에서 드로잉으로 퍼 올린 작품제목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DMZ-일상' 안에서 잰 온도는 서로 다르고, 개개의 작업은 순식간에 커다란 파열음을 내기엔 미약할 것이다. 그러나 함께 만나 서로 소통하고 부비며 온도를 높인다면 드로잉이 차가운 세상을 녹일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나는 이성에 호소하는 증거가 아닌, 오직 내 뼛속까지 움직이게 하는 증거만 믿는다.”라고 한 앙토냉 아르토(프랑스의 극작가, 시인, 배우)의 말처럼, 앞으로 DMZ 드로잉 작업이  일상의 증거가 되어 스스로는 물론 현실의 뼛속을 건드리며 움직이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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