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의 빗장풀기(2006, 드로잉 에너지 전시) - 김형미/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김태헌은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무척이나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1990년대 초중반 그는 ‘뜨거운’ 머리와 가슴으로 사회에 대해 역사에 대해 반응하고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선언적으로 드러내었다. 그에게 있어 정치・사회적, 문화적 현실은 날카롭고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너와 나의 - 우리의 - ‘보편현상’이었다. 김태헌의 첫 번째 개인전에 대한 비평글을 보면, ‘실천’, ‘행동’, ‘역사’, ‘정치’, ‘시대’, ‘의식’ 등의 어휘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데, 아마도 그만큼 세상에 대한 그의 시선이 강렬했기 때문이리라. 의지 변화가 현실을 앞서서 일까. 아니면 아예 현실이 인간의 사고 패턴을 벗어나 자발적으로 변이를 진행해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보다 단순히 - 그러나 중요한 부분인데, - 너무나도 과열된 그의 머리와 심장이 균형 잃은(?) 열정에 에너지를 소진시킨 주인에게 반항을 해서일까. 김태헌은 다시 ‘0’지점으로 자신의 대사회적인 태도와 예술적 입장을 돌려놓는다. 그 방법이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효과를 본 듯하기도 하다. 바로 ‘소각’이다.

1990년대 말과 2002년 두 차례 걸친 작품소각은 그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태도와 방법을 취하기 용이한 선상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목청껏 눈에 핏발서게 외쳐대 봤자 도무지 먹혀들어가지 않는 상황을 목도한 김태헌은 그 ‘소통’, ‘공감’이라는 것이 좀처럼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감 잡았다. 그리하여 그는 의도적인 변화에의 요구와 선전에서 자발적인 실존적 가치에 대한 기대로 자신의 입장을 선회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뭔가 바꿔 보고자 노골적으로 외부현실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세우는 방식이 좀처럼 수용되지 않는 데에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한 끝에 방법이나 대상에 있어 모든 면에서 그 촉수의 방향을 내부로, 즉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게 되었다. 이를 테면, ‘나나 잘하자’가 모토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자신을 통해서 무언가를 보여주되, 억지스럽지 않게 무리 없이 흐르는 방향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것이 <화난중일기>, <김씨의 하루>, <검은 말>, <화첩기행> 연작 등이다.  

대부분 16절지정도, A5 사이즈 인쇄용지 크기를 갖는 그의 드로잉 작업은 거의 세상에서 그가 ‘주어오고’ ‘훔쳐온’ 이야깃거리들을 담고 있다. 김태헌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에 대해 에디팅(editing)을 하는 것으로, 그는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바깥에서 가져온 이미지에 덧붙여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긴다. 도를 터득하고자 하는지 가능한 한 수행의 자세로 세상을 관조하고자 하는 그는, 그래서일까, 여행을 즐긴다. 그가 다닌 곳을 살펴보면 티벳, 몽골, 중국, 인도 등으로 자의에 의해서든 아니면, 타의에 의해서든 무엇인가가 그를 ‘순리’, ‘본질’에 대한 성찰로 인도하는 듯싶다. 다소 과장과 억지가 섞인 것은 사실이리라. 여하튼 그가 구조적 억압과 타인에 의한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단지 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그는 스스로가 일종의 알레고리로 작용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타인지향의 삶, 그리고 그 폐해로부터 자유로워  지고자 하는 의지는 끊임없이 또 다른 ‘나’, 수많은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되고 교차 반복적으로 스쳐지나간다. 이렇게 된다면 그가 의도하는 바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게 아닐까.

다시 김태헌과 그의 작업이 갖는 특징을 살펴보면, 이번 전시에서도 들어나는 바, 그는 친절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그의 이미지는 이야기를 가득 실고 다닌다. 재현적이고 구상적인 형상과 배경으로 이루어진 화면으로도 충분히 언어의 분출을 보여주는 그는 여기에 덧붙여 아예 텍스트, 문장을 화면 속에 끌어들인다. 그야말로 ‘이야기 가득한 그림’ 그 자체다. 그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1997년부터 시작한 그림일기 <화난중일기>에 잘 드러난다. 일기형식으로 그가 만나는 하루하루, 세상이야기를 쏟아놓은 이 작업에서 주저 없이 풀려나온 말과 글은 결국에는 ‘출판’이라는 기가 막히게 적절한 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2004년 <천지유정>, 2005년 <1번 국도> 등은 세상에서 건져낸 각종 사소한 소음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그에게 이젠 일종의 생존본능이 되어버린 ‘여행’과, 자신이 직면한 현실과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의 발언본능인 ‘수다’, ‘말하기’, 이 둘의 절묘한 결합에 의해 탄생한 필수 불가결의 출판물이다.

물론 이전 「공간의 파괴와 생성 - 성남과 분당사이」라는 단행본을 통해 그의 출판에의 의지가 발현된 적 있으나, 이는 자신의 참여적 현실발언의 맥락이 연장된 것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한정된 독자를 위한 것이어서 그런지 오히려 그 구체성에도 불구하고 출판물 존재자체의 모호함이 느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그때 주어진 현실 상황에 맞춰 작업으로 실천하는 그이기에 당시로서는 충분히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극히 사적이고 구체적인 일상을 담고 있는 최근의 작업이 보다 설득력 있게 보편현상을 끌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공감을 형성하고자 평범한 일상을 건드려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그의 삶에 대한 폭넓은 포용적 관점(Big Prospect, 이는 거대담론 Grand Discourse와는 다른 차별적 용어이다)이 소서사(small narrative) 속에 끊임없이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이전보다 조금 자유로워졌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덮고 있는 여러 굴레로 버거워 했었다면 아예 그런 굴레를 벗어 버리는 거 자체가 컨셉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여러 경계를 훨씬 수월하게 넘나들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장난기 가득히 세상에 딴죽을 거는가 하면, 때로는 사뭇 진중한 태도로 알 듯 모를 듯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한정된 카테고리를 보다 용이하게 던져버리게 된 것도 아마 ‘출판’때문일 것이다.

출판은 일차적으로 전시를 통해 세상과 자신이 만나는 물리적 방법상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였고, 이로써 보다 멀리, 깊이 존재하는 ‘독자’를 만나게 함으로써 ‘관객’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또한 ‘미술’, ‘예술’이라는 범주가 가지는 개념적, 규범적 구속에서 풀려나는 통쾌함도 맛보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김태헌은 재생지를 활용해서 제작한 다량의 드로잉 북을 내놓을 예정인데, 그동안 바깥세상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가득 담은 그의 이야기 그림책은 관객과 독자의 구분, 전시장과 도서실의 경계 또한 지우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여기서 김태헌이 가지는 특징을 이야기하던 김에 하나 더 언급하자면, 김태헌은 알뜰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는 ‘재활용’을 즐긴다. 더 이상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재활용을 생활화하고 예술화하고 창조화한다. 현실과 계속 마주하고 그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까.

일단 그는 주어온 물건, 기존 인쇄물, 사용했던 캔버스천 등을 애용한다. 출판물 제작에 있어서도 재생지를 사용하는 데 이 또한 뭔가 나름의 의지가 담긴 듯 하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발상의 전환, 참신함에 있어 기존 사물의 활용, 용도변경만큼 효과 만점인 것은 없을 것이다. 역시 그는 천성이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 난 사람일까. 그렇기도 하겠거니와 김태헌의 지금까지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무엇인가 자꾸 집히는 것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한 때 강렬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세상에 뿜어내던 그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세상에 한 켜 더 때를 입히고 무게를 보태는 일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이상 작위적 발설형태의 에너지 배설을 멈추고, 예민한 촉수를 통해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서 건져낸 기존의 사물이나 현상 안으로 자신을 들여보내는 방식을 취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는 말하기를 과거에 자신이 공간의 문제에 몰두하였다면 이제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했는데, 드로잉이야말로 ‘시간’에 가까운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시간은 현존하는 시간과 이전 경험의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런 순간이고, 공간적 부피감과는 달리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저 깃털처럼 가벼우며, ‘내’안에 살아있는 생생한 기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그 때의 시간 속 기억이 내 현재 안에서 살아 숨쉬며 지금의 나를 더욱 충만하게 하는 그런 기운을 경험할 때처럼 말이다. 김태헌의 언급처럼, 여행 이후 사진 속 풍경은 자신으로 하여금 지금 이 곳에서 다시 ‘여행’을 떠나게 하고 당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여행’ 중인가 보다. 일상 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행 중 일상을 환기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 얼마나 창의적 재활용인가. 현재 ‘출판’을 통해 진행 중인 그의 경계넘나들기가 앞으로 어떠한 변이를 가져올지 기대되는 이유도 이같이 에너지가 활력 있게 교류하는 그의 세상살이 때문이다.    


Kim Taeheon is a man of passionate love for humans and the world. In the early and mid 1990s, he declared his will and ideas about society and history with his burning passion for them. To him, political, social, and cultural reality is a common phenomenon between "you" and "me"- "us"- that demands sharp and aggressive intervention. Critiques of his first solo exhibit are reiterated with such words as "practice," "action," "history," "politics," "era," "consciousness," and the like, which may reflect the way he makes sense of the world. Does his will change ahead of reality? Or, does reality transform itself beyond the patterns of human thoughts? Or, better yet, more simply-but more importantly, are his idea and passion out of balance? His attitude toward society and his artistic stance turn back to the point of "zero." It sounds rather extreme, but it seems working quite well for him, which is manifested in the incineration of his works.    

The incineration of his works twice, one at the end of the 1990s and the other in 2002, motivated him to place himself in a spot that allows him to take a stance different from that before. Having realized that his crying out with bloodshot eyes was not heard at all, Kim sensed that "communication" and "sympathy" are the things that were not readily achieved. Consequently, he changes his stance from "demand for intentional changes" to "desire for voluntary, existential value." To elaborate in more detail, he decided to turn everything to himself as a result of some serious thought about the reason why his overt way of criticizing the outer world for a change had hardly gained acceptance. In other words, it seems he finally sought ways to go with the flow while freely expressing him with the motto "let's mind myself." The results of such changes in his attitude include "Pictorial Admiral's Diary," "A day of Mr. Kim," "Black Words," "Travelogue Album," and the like.

Most of his drawings in the size of A5 paper depict the stories he "picked up" or "stole" from the outer world. He edits the world in his own way and adds his thoughts in writing to the images he borrowed from the world. He tries to contemplate the world in a sitting position as if he tries to cultivate his moral sense. Maybe that is why he enjoys traveling. He has traveled such places as Tibet, Mongolia, China, and India and, voluntarily or involuntarily, seems to have been led to reflect the "course of nature" and "essence" by something inexplicable. There might be some exaggeration and unnaturalness in his works. Nevertheless, it holds true that he endeavors to cast off the shackles of attachment imposed by structural constraints and the others. He may not be the only one who tries to free him- or her from the constraints. It is certain that he himself becomes a kind of allegory. His will to free himself from the Other-oriented life and its evil effects constantly overlaps with another "I" and "We" and passes by. Does it not mean that he has accomplished, if not all, some of what he wished?  
    
Back to Kim and his work, he is friendly as this exhibit shows. In other words, the images in his work are full of stories. His work is more than enough to tell stories with concrete images and backdrops, but he adds text to it. It is indeed a "painting full of stories." His outstanding capacity for storytelling is evident in the pictorial diary "Pictorial Admiral's Diary"he started in 1997. In this work, which narrates stories about daily life and the world endlessly like a diary, his writing and speech are set free through the remarkably apt outlet "publication." "Cheonjiujeong" in 2004 and "National Road 1" in 2005 are the essential publications that were born out of the remarkable union of his "talkativeness" and "speaking" through which he, who is now able to listen to various noises of the world, attempts to communicate with the world by means of "traveling," which now has become a kind of his survival instinct, reality he faces, and his response to it.    

Of course, he once realized his will to publish his story through the book titled "The Formation and Destruction of Space : Between Seongnam and Bundang." However, the existence of the book itself is obscure despite its concreteness maybe because it is an extension of his speech or because it is for only selected readers. Even so, it is significant for him because he is an artist who creates works in accordance with the situation given at each moment he has. Despite this, however, why do his recent works, which are extremely personal and about concrete daily life, convey universal phenomena more convincingly? They do not give that impression simply because they deal with ordinary daily life. They do so because the "big perspective," which is different from "grand discourse," of his life is fused with small narrative. Now he may be a bit freer than before. If he felt burdensome because of the shackles imposed upon him, he could now cross various boundaries far more easily by casting them off. He often playfully challenges the world or asks obscure questions in a serious manner. It is probably the "publication" that allows him to free himself from the limited category that has surrounded him.        

Above all, the publication of his book helped him overcome the limitation of physical methods he himself and the world faces through his exhibit, which then expands the realm of "spectators" by allowing him to meet "readers" far away. In addition, it gives him a keen pleasure of escaping from the conceptual and normative constraint the category of "art" imposes. In this exhibit, Kim is supposed to show many drawing books that he made by utilizing recycled paper. Among them, his pictorial storybook full of stories he has heard in the outer world generates energy by blurring the boundary between the spectator and the reader and between the exhibition space and the library. To mention one more of Kim, he is thrifty. He loves "recycling." There is a saying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ky any more," but he makes recycling part of his life, art, and creative activity. It is maybe because he does not want to miss not a single thing in reality.        

He prefers objects he found on the street, printed matter, and canvas already used. He also uses recycled paper for the publication of his book perhaps for some reason on his own. It could be for economic reason; however, as we all know too well, nothing is more effective than recycling or changing the intended usage of used objects for psychological reorientation. Is he indeed an artist by nature? Maybe so, and judging from his attitude, there is something that strikes me. It seems that he, who used to exude energy to the world, may have felt that changing his attitude would add more weight and layers to the world. I think that is why he decided to stop exuding his energy artificially and instead assimilate himself with the existing objects or phenomena that he discovered in a given environment or situation through his sensitive antenna.  

Kim says that if he focused on space in the past, he now wants to talk about "time" and drawing is the very work close to "time." The time he talks about is a moment in which present time coexists with previous time. Also, time is, unlike spatial volume, as light as a feather no matter how much it is piled up, and alive vividly within "himself." It is like recalling the memories that are alive in me and experiencing the energy that makes me feel full even more now even when we come back from a trip. As Kim mentioned, the scenery of the pictures he takes during a trip forces him to set out on a trip again and learn something he has not yet known. Maybe that is why he is still on a journey, although we do not know whether he is on a journey to his daily life or he is changing a pace while on a journey. What a creative way it is to recycle! It is his energetic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that renders us curious about the changes his crossing the boundary through "publication" may bring about.


[prev] 하로동선(2012, 서울드로잉클럽/스페이스몸미술관 전시서문) - 김태헌 2011/03/23 
[next] 천개의 강(2010, 스케이프갤러리 개인전) - 김태헌 2011/03/23 
list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Thedea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