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강(2010, 스케이프갤러리 개인전) - 김태헌
  무갑산 자락에 살다보면 멍 때릴 때가 많다. 내게 부족한 느림, 낮음, 건강을 채워보려고 이곳에 들어왔다. 어느새 10년 세월이 흘렀다. 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이곳의 무료한 일상은 자칫 수위조절을 상실하면 ‘한가로움’이 범람하여 삶을 침몰시킨다. 범람을 막으려고 나는 수많은 드로잉으로 둑을 쌓았다. 그러다 1년 전부터 범람과 상관없이 느린 그림을 그린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눈은 창 너머 먼 곳을 바라본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다. 늘 이곳 아닌 먼 다른 곳에 관심을 가졌다. 거기에 내 삶의 답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탓이다. 생각해보니 열공해야 할 중․고등학교 수업 중에 높은 담장 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선생님에게 혼도 많이 났다. 지금도 쓸데없이 딴 생각, 딴 짓하며 싸돌아다니다 주의를 받는다.

  평소 안 그리던 풍경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콕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이른 노화와 김빠진 욕망, 호르몬 문제 같은 게 뒤섞인 탓 일게다. 작년 겨울부터 틈나면 하나씩 그려 보았다. 처음엔 한 땀 한 땀 수놓듯, 구슬 꿰는 부업을 하듯 인내를 독선생으로 모셔두고 고되게 그렸다. 10년 동안 A4용지 크기에 낙서하듯 그렸는데, 풍경화를 그리며 4호 캔버스로 많이 커졌다. 뭐! 고만고만한 크기지만 목표한 30개를 그리는 사이 다른 문을 기웃거려 본다.

  내가 선택한 풍경은 내 안의 무엇과 찌릿 통하며 날 세워 놓았던 곳들이다. 시간이 지나도 이들 풍경은 계속 나를 붙잡아 두며 여전히 그때 느낌을 전해준다.
  남인도, 백두산, 한탄강, 임진강, 남한강, 샌프란시스코, 1번국도, 성남 은행동, 서산 가로림만, 제주 올레길, 중국 성도, 티벳, 베트남 사파, 터키, LA 등이 그곳이다.
  한편, 세상 여기저기서 사들이거나 주워온 것을 펼쳐놓고 뭔가 해볼 양 흘끔흘끔 쳐다본다. 그림그리기와 함께 생긴 오랜 습관이다.

  그림은 내가 바라보았던 풍경이다. 집 앞 풍경과 여행에서 만난 풍경으로 내 삶의 영역을 드러낸다. 한편, 세상과 일정한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며 관계하는 태도도 발견된다.
  작업을 시작할 때면, 나는 한참 풍경을 바라본다. 당연히 실경은 아니다. 디카로 찍고 노트북에 저장된 풍경이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면, 종종 작업 시간보다 길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내 안의 한 놈이 튀어나오고 나는 곧장 그 놈에게 바통을 건네준다. 완성된 작업의 최초 감상자인 연주가 “여러 사람이 그려 놓은 것 같다”며 걱정스레 말을 한다. 옹색하게 나는 완당 팔뚝 안에 있는 300개가 넘는 서체와 내 안의 다중이를 들먹거린다. 따지지 말 일이다. 단지 나는 다중이에게 적당히 룰을 제시하면 그뿐이다.

  내 그림은 여행지에 따라 매번 그림 스타일이 다르다. 대상 앞에서 나를 무장해제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마당일 하려면 삽 한 자루 가지고는 안 된다. 군대도 아니고……. 골프 선수가 상황에 따라 다른 골프채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대학생 시절 이론수업에서 “나는 지휘자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을 들쑤시며 재미있게 놀라치면 내안에 다양한 형식이 필요하다. 무모하지만 나는 모든 형식 앞에 자유롭고 싶다.

  콩고강의 가장 깊은 곳은 무려 210m의 칼날 같은 협곡으로 세계 최고의 수심이다. 강물이 이 곳에 다다르면 엄청난 유속을 내게 되고, 그 수면은 홍수를 만난 것처럼 거세다. 물고기는 빠른 물살에 고립되며, 그런 이유로 이들은 생존을 위해 아주 빠르게 진화한다. 콩고강의 새롭고 다양한 어종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붕붕 오가며 해 왔던 내 작업도 콩고강처럼 매순간 진화를 거듭하길 바란다. 나의 풍경화는 콩고강의 하류에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듯 진화하고 있다.

  내 작업은 진화하는 중일까?
  오랜만에 계획하며 진행했던 풍경화 작업을 얼추 끝내놓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동안 과정에서 생기는 곁가지들을 치며 풍경화 연작에만 집중했다. 그런 그림을 작업실에 펼쳐놓고 시간을 두고 며칠간 낯설게 바라보았다. 우연히 마주친 대상처럼 보이기 시작하자 그림은 스스로 견고한 물질성을 띄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 내 손으로 부비며 놀던 것이 이젠 내 맘대로 하기엔 하나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낯선, 저것인 양 몇 걸음 밖으로 멀어진 그림은 우습게도 저마다 자신의 거리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 안엔 수줍음, 냉정, 웃음 띤, 뻐기는, 장난스런, 당당함이 배어나온다.
  가끔은 사건이 발생할 듯한 징후가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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